아침에 메일함을 열면 생산관리의 “다음 주 부족 품목” 목록, 협력사의 “원자재 인상에 따른 단가 조정 요청”, 품질팀의 “입고 불량 통보”가 한꺼번에 와 있다. 구매 담당은 오전 내내 전화로 납기를 확인하고, 오후에는 견적을 비교하다 하루가 끝난다. 그런데 이게 ‘사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요청 시점·리드타임·총비용·기록이 따로 놀아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제조업 직무별 업무 시리즈의 첫 회로, 오늘은 구매 직무가 무엇을 하고 어떤 문서와 시스템을 쓰며 무엇으로 평가받는지 실무 순서로 정리합니다.
1. 구매가 늘 급한 일에 끌려다니는 이유

구매 담당이 매일 ‘불 끄기’를 하게 되는 원인은 대개 이 넷으로 수렴합니다.
- 요청이 늦게 온다 — 설계 변경이나 긴급 수주가 생산관리·자재를 거쳐 구매에 도착하면, 필요일까지 남은 날이 이미 조달 리드타임보다 짧다.
- 리드타임을 모른다 — 협력사가 말한 공칭 리드타임으로 발주일을 잡는다. 실제 입고까지 걸린 날짜는 아무도 다시 재지 않는다.
- 단가만 본다 — 단가를 깎은 대신 운송비·불량·재작업·재고가 늘면, 회사가 실제로 쓰는 돈(총소유비용)은 오히려 오른다.
- 이력이 흩어진다 — 견적은 메일, 발주는 ERP, 납기 약속은 전화와 메신저. 누가 언제 무엇을 약속했는지 남지 않으니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즉 구매는 ‘싸게 사는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요청 시점·리드타임·총비용·기록의 문제입니다.
2. 구매가 보는 숫자 — 품목 구분과 성과 지표

모든 품목을 같은 방식으로 사면 일이 넘칩니다. 1983년 피터 크랄직(Peter Kraljic)이 Harvard Business Review에 소개한 구매 포트폴리오(크랄직 매트릭스)는 품목을 공급 위험과 원가(이익) 영향 두 축으로 나눕니다.
- 일상 품목 — 위험도 금액도 작은 소모품. 묶음 계약·카탈로그 구매로 손을 덜 쓴다.
- 레버리지 품목 — 공급사는 많고 금액이 큰 강판·수지 같은 품목. 경쟁 견적과 물량 통합으로 단가를 다룬다.
- 병목 품목 — 금액은 작아도 단독 공급이라 없으면 라인이 서는 부품. 단가보다 안전재고와 대체선 확보가 먼저다.
- 전략 품목 — 위험도 금액도 큰 핵심 모듈·주요 원재료. 장기 계약, 공동 개발, 정기 평가로 관계를 관리한다.
그리고 구매는 보통 이런 지표로 평가받습니다. 이름과 계산식은 회사마다 다릅니다.
- 납기 준수율 — 약속한 날짜에 들어온 발주의 비율. 수량까지 맞았는지 함께 보는 방식(OTIF)도 있다.
- 입고 불량률 — 수입검사에서 걸린 비율. 보통 PPM(백만 개당 불량 수)으로 본다.
- 원가 절감액·구매가격 차이 — 기준 단가 대비 실제 구매 단가의 차이.
- 긴급 발주 비율 — 표준 리드타임보다 짧게 낸 발주의 비율. 계획이 얼마나 늦게 내려오는지 보여 준다.
- 발주 처리 시간 — 구매요청에서 발주 확정까지 걸린 시간.
단가 절감 하나만 보면 나머지 넷이 무너지기 쉽습니다. 지표는 품목 구분과 함께, 묶어서 봐야 합니다.
3. 구매 실무 5단계 — 요청에서 정산까지

구매 담당의 하루는 이 5단계가 품목마다 다른 속도로 겹쳐 돌아가는 일입니다. 순서를 건너뛰면 반드시 특정 칸에서 터집니다.
- 구매요청 확인(PR) — MRP 계획발주나 부서 요청을 받아 품번·수량·필요일·사양을 확인한다. 필요일에서 리드타임을 빼 보면 이미 늦은 요청이 바로 걸러진다. 소요량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MRP 소요량 계산 실무 5단계에서 다뤘다.
- 견적·협력사 선정(RFQ) — 사양·수량·납기·조건을 같은 견적요청서로 보내 견적을 받고, 단가 옆에 운송·포장·결제 조건·품질 이력을 같이 비교한다. 수입 품목이라면 국제상업회의소(ICC)가 정한 Incoterms 2020의 11개 조건 중 무엇을 쓰느냐에 따라 운임·보험·위험이 넘어가는 지점이 달라진다.
- 계약·발주(PO) — 품목·수량·단가·납기·검수 조건을 발주서로 확정한다. 제조를 맡기는 하도급 거래라면 하도급법에 따라 협력사가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계약 서면을 발급해야 한다. 2023년 10월 4일부터는 하도급대금 연동제가 시행되어, 하도급대금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원재료가 있으면 원재료 이름·조정요건·연동 산식·조정일 등을 서면에 적어야 한다. 90일 이내 단기 계약, 1억 원 이하 소액 계약, 양측이 연동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그 사유를 서면에 적은 경우 등은 예외다.
- 납기 관리 — 납기가 가까운 발주잔을 매일 확인하고, 지연이 보이면 생산관리와 함께 대체 품목·분할 납품·일정 조정을 정한다. 바뀐 약속은 메신저가 아니라 발주 이력에 남긴다.
- 입고·검수·정산 — 입고 수량과 수입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발주서·입고 기록·거래명세서(세금계산서) 세 가지를 맞춰 본 뒤 대금을 처리한다. 하도급 거래는 목적물을 받은 날부터 60일 이내의 가능한 짧은 기한으로 정한 지급기일까지 대금을 지급해야 한다.
한 주로 펼치면 리듬은 대개 이렇습니다.
- 매일 아침 — 발주잔·납기 임박 목록과 오늘 입고 예정 확인. 지연 품목은 생산관리에 먼저 알린다.
- 매일 오후 — 새 구매요청 검토, 견적 요청과 비교, 발주 확정.
- 매주 — MRP 계획발주 검토, 주요 협력사 납기 회의, 원자재 시세·환율 변동 점검.
- 매월·분기 — 협력사 평가(품질·납기·가격·대응), 원가 절감 실적 정리, 연동 대상 품목 단가 조정.
쓰는 문서는 구매요청서, 견적요청서(RFQ), 비교견적표, 발주서(PO), 거래명세서, 수입검사 성적서, 협력사 평가표가 기본이고, 시스템은 ERP 구매 모듈이 중심입니다. MES·WMS는 입고와 불출 실적을, 협력사 포털은 견적과 납기 회신을 받는 창구가 됩니다. 문서 이름은 회사마다 달라도, 요청에서 정산까지 한 줄로 이어지는지가 핵심이다. 같은 양식을 현장에서 쓰려면 글 아래 관련 문서양식을 받으면 됩니다.
4. 현장에서 자주 터지는 문제 4가지

① 단가는 깎았는데 총비용이 오른다 저가 공급사로 바꾼 뒤 입고 불량·재작업·운송비가 늘어난 경우다. 비교견적표에 단가만 두지 말고 운송·포장·불량 처리·재고 보유 비용 칸을 같이 둔다. 이것이 총소유비용(TCO)으로 비교하는 방법이다.
② 긴급 발주가 일상이 된다 요청이 리드타임보다 늦게 오는 구조다. 품목별 실제 리드타임(발주일→입고일)을 최근 이력으로 다시 재고, 생산계획 확정 시점과 구매 마감 시점을 같은 달력에 맞춘다. 긴급 발주 비율을 매주 공유하면 늦은 요청이 어디서 생기는지 보인다.
③ 원자재가 올랐다며 단가 인상 요청이 반복된다 근거 없이 협상하면 매번 감정 싸움이 된다. 주요 원재료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은 계약 단계에서 기준 지표·조정요건·산식을 정해 둔다. 그러면 인상도 인하도 같은 산식으로 처리되고, 하도급 거래라면 연동제 기재 의무도 함께 충족된다.
④ 단독 공급 부품 하나에 라인이 선다 병목 품목을 금액 기준으로만 관리한 결과다. 병목·전략 품목은 따로 목록을 두고 대체선 후보, 안전재고, 협력사의 생산·재무 상황을 정기적으로 점검한다. ‘금액이 작으니 나중에’가 가장 비싼 결정이 되기 쉽다.
5. 개선 로드맵 — 전화·엑셀에서 ERP·AI까지

구매 시스템을 한 번에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성숙도에 맞춰 단계적으로 올라가면 됩니다.
- 1단계 (표준화) — 품목 마스터(품번·사양·리드타임·최소발주량·주 공급사)와 견적요청서·발주서 양식을 하나로 고정한다. 품목 구분(일상·레버리지·병목·전략)도 이때 붙인다.
- 2단계 (연결) — 구매요청·발주·입고·검사·정산을 ERP 한 흐름으로 묶어, 발주잔과 납기 약속을 한 화면에서 본다. 전화로 바뀐 납기도 시스템에 남긴다.
- 3단계 (자동화) — MRP 계획발주가 구매요청으로 자동 전환되고, 협력사 포털로 납기 회신과 거래명세서를 받는다. 사람은 예외(지연, 단가 변동, 입고 불량)만 본다.
- 4단계 (지능화·AI) — 지출 데이터를 품목·공급사별로 자동 분류해 절감 후보를 찾고, 원자재 시세·환율·납기 이력으로 공급 위험을 미리 알린다.
핵심은 1·2단계(품목 마스터와 발주 이력이 맞는 데이터) 없이 3·4단계(자동 발주·AI)로 건너뛰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점입니다. 틀린 리드타임으로 자동 발주를 돌리면 긴급 발주가 더 빨리 쌓일 뿐입니다.
스마트팩토리·AI 시대의 구매
구매가 다뤄야 할 숫자는 단가와 납기에서 더 넓어지고 있습니다.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2026년 1월 1일부터 확정 단계에 들어가,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력·수소 등 대상 품목을 EU로 들여오는 수입자가 내재 탄소 배출량에 해당하는 CBAM 인증서를 사고 반납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요구는 공급망을 따라 내려오기 마련이라, 협력사에서 받아야 할 데이터에 배출량 같은 항목이 더해집니다. 디지털·AI가 구매를 바꾸는 지점도 결국 같습니다. 견적 비교·발주·납기 독촉 같은 반복은 시스템이 맡고, 사람은 어떤 품목을 누구와 어떤 조건으로 오래 거래할지를 판단합니다. 좋은 구매는 단가표가 아니라, 요청에서 정산까지 한 줄로 이어진 기록에서 출발합니다.
CONTIS는 품목·협력사 기준정보 정리부터 구매 프로세스 표준화, ERP·MES 연동, 스마트팩토리 공급망 가시화까지 단가와 납기를 같이 지키는 여정을 함께합니다. 구매 프로세스·협력사 관리·스마트팩토리 진단이 필요하시면 문의해 주세요.